본문 바로가기
한국사

고구려의 역사와 발전: 주몽의 이야기와 5부족 연맹 그리고 동예와 옥저

by 유나이티드준 2023. 10. 31.
반응형

고구려의 역사와 발전: 주몽의 이야기와 5부족 연맹 그리고 동예와 옥저
출처 : 구글 이미지

고구려의 역사와 발전: 주몽의 이야기와 5부족 연맹 그리고 동예옥저

고구려 역사와 발전, 5부족 연맹체, 풍습, 그리고 옥저 와 동예의 특징을 함께 알아보고자 합니다.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세하고 유용한 정보를 살펴보겠습니다.

- 목 차 -
1. 고구려의 역사와 발전
    1) 고구려의 기원과 주몽의 건국
    2) 약탈 경제의 발전
    3) 고구려의 확장
2. 고구려의 5부족 연맹체
3. 고구려의 풍습
    1) 서옥제(데릴사위제)
    2) 제사와 문화
4. 옥저와 동예
    1) 옥저와 동예의 특징
    2) 옥저
    3) 민며느리제
    4) 동예
    5)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
    6) 씨족 사회의 특징

1. 고구려의 역사와 발전

1) 고구려의 기원과 주몽의 건국

고구려는 한반도 역사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37년, 주몽이 부여에서 내려와 고구려를 건국했다. 이 지역은 압록강 유역의 졸본(환인) 지방에 자리 잡았으며, 지리적으로 서쪽의 요동, 동쪽의 동해안, 북쪽의 송화강 유역, 남쪽의 한반도 서북부와 연결되는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2) 약탈 경제의 발전

고구려의 주요 특징은 지형적인 제약 때문에 농토 부족이었던 점입니다. 이 지역은 대부분 큰 산과 깊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산악 지대였기 때문에, 농업에 필요한 토지가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약탈 경제가 발달했으며, 사람들은 양식 부족으로 인해 힘써도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3) 고구려의 확장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주변 소국을 정복하고 평야로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기원후 3년에 수도를 압록강가의 국내성(집안)으로 옮겨 5부족 연맹을 토대로 발전했습니다. 그들은 활발한 정복 전쟁을 통해 한의 군현을 공략하고 요동 지방으로 진출하였을 뿐 아니라, 동쪽으로는 부전 고원을 넘어 옥저를 정복하여 공물을 받았습니다.

2. 고구려의 5부족 연맹체

고구려의 5부족은 계루부, 소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부족들은 왕 아래에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으며, 각 부족은 지방 관리를 거느렀습니다. 중요한 국사는 왕과 왕족 및 부의 대가들이 회의를 열어 처리했으며,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 회의를 통하여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습니다.

3. 고구려의 풍습

1) 서옥제(데릴사위제)

고구려에는 서옥제(데릴사위제)라는 풍속이 있었습니다. 이는 남자가 혼인을 한 뒤 일정 기간 동안 처가에서 살다가 남자 집으로 돌아와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자 집에 서옥이라는 작은 집을 짓고 살다가 자녀가 성장한 후에야 처자를 본가에 데리고 갔습니다. 이 풍속은 사위가 처가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노동력을 봉사했다는 점에서 봉사혼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2) 제사와 문화

고구려인은 건국 시조인 주몽과 그 어머니 유화 부인을 조상신으로 섬기며, 10월에는 추수 감사제인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성대하게 치루고, 왕과 신하들이 국동대혈에 함께 모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장례를 성대하게 지내고 금, 은의 제물을 모두 장례에 소비하였으며, 돌을 쌓아서 봉분을 만들고 소나무, 잣나무를 주변에 심었습니다.

반응형

4. 옥저동예

1) 옥저동예의 특징

옥저동예의 각 읍락에는 읍군이나 삼로라는 군장이 있어서 자기 부족을 다스렸으나, 이들은 큰 정치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함경도 및 강원도 북부에 위치한 옥저동예는 변방에 위치해 있어서 선진 문화의 수용이 늦었으며, 고구려의 압력을 받아 크게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2) 옥저

옥저 지역은 어물과 소금 등 해산물이 풍부하며, 토지가 비옥하여 농사가 잘 되었던 특징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소와 말이 부족하며 보전을 중시했습니다. 옥저고구려와 부여족의 한 갈래로 음식, 주거, 의복, 예절 측면에서는 고구려와 유사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장례와 혼인 풍속은 서로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3) 민며느리제

일종의 매매혼으로, 생활이 곤궁하여 딸을 양육할 수 없을 때, 장차 아내가 될 것을 전제로 남자의 집으로 가서 자라 성인이 되면 친가로 돌아와 있다가 남자 측에서 대가를 지불한 후 시집을 가는 것입니다. 이는 여자를 재산으로 치고, 딸을 줄 때에 양육비를 지불하도록 하는 풍속입니다. 또한 가족이 죽으면 시체를 가매장하였다가 나중에 그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 무덤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였습니다.

4) 동예

동예 지역 역시 토지가 비옥하고 해산물이 풍부하여 농경, 어로 등 경제 생활이 윤택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새벽에 별자리를 관찰하여 그 해의 풍흉을 미리 예언하는 문화가 있었으며, 명주와 삼베를 짜는 등 방직 기술이 발달했습니다. 특산물로는 단궁이라는 활과 과하마, 반어피 등이 유행했습니다.

5)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

동예에서는 매년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 행사는 농경 사회의 추수 감사제의 전통을 이은 것으로, 생산 활동에서 차지하는 농경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풍속입니다.

6) 씨족 사회의 특징

동예는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있어서 외부의 간섭과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상태에서 씨족 사회의 유풍을 오래 유지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씨족 내에서 혼인을 하지 않는 족외혼을 엄격하게 지키고, 호랑이를 신으로 여겨 재사지낸다고 합니다. 이것은 호랑이를 산신으로 섬기던 원시 시대의 풍습이 잔존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각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이를 위반하면 책화라 하여 노비와 소, 말로 변상하게 했습니다. 이런 풍속은 지역 주민의 생활 안정과 재산 보호를 위해서 존재한 벌칙이었습니다.

 

고조선의 탄생에서 변화까지: 청동기 문화와 단군 신화를 통한 한반도 초기사회 이해

위만 고조선의 변화와 발전: 위기를 극복한 고조선 후예들의 문화 유산

부여의 역사와 유산: 한반도 국가의 형성과 성장

반응형
>